[인터뷰①] '프라이드' 이정혁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나중에 깨달아"
[인터뷰①] '프라이드' 이정혁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나중에 깨달아"
  • 김은정 기자
  • 승인 2019.08.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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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0년차 배우 이정혁, 첫 연극 데뷔 '프라이드'
감정 표현의 어려움, 자신감 잃었던 적도 있어
캐릭터 행동의 정당성과 연결점 만들기 위해 노력

[이뉴스데일리 김은정 기자] ‘가엽고 사랑스러운 올리버.’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우와 캐릭터를 오가는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자신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한참 동안 스스로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첫 연극 도전인 만큼 발견하고도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었을 터. 소중한 기회이기에 더욱 절실했고, 잘 해내고 싶었던 배우의 욕심이 느껴졌다. 그는 이미 연극과 사랑에 빠져있었다. 선택할 수 없으니 먼저 선택되기를 바라며 무대를 향한 열의를 불태우는, 배우 이정혁의 이야기.

배우 이정혁은 지난 5월 25일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개막한 연극 ‘프라이드’에 올리버 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올리버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며, 새로운 일에 두려움이 없는 성격의 인물이다.

지난 2010년 SBS플러스 '키스 앤 더 시티'로 데뷔한 이정혁은 KBS 2TV ‘파랑새의 집’(2015), ‘공항 가는 길’(2016), MBC ‘밥상 차리는 남자’(2017), 영화 ‘치즈인더트랩’(2017) 등 TV드라마와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그리고 2019년 5월, 첫 연극 ‘프라이드’에 도전했다.

‘프라이드’ 무대에 오른 지 2개월이 흘렀다. 종연을 약 2주 앞둔 소감을 묻자 이정혁은 많은 것을 아쉬움을 표했다. 가장 큰 것은 자신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처음 연극 ‘프라이드’에서 많이 배우고 경험했다. 막 합류했을 때는 3개월이라는 공연 기간이 짧지 않게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언제 개막했나 싶을 정도로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아쉽다. 항상 잘하고 있는지 의심하며 지냈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연극이 이런 거구나’ 하고 가슴 깊이 느낀 시점이 늦은 것 같다. ‘프라이드’라서 더 그랬다. 깊이가 있는 작품이잖나. 대본을 보면서 바로 느꼈었지만, 그걸 내 안에 적립시키는 데 시간이 걸렸다. 공연 하면서도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 쌓아가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어떻게 느끼고 표현해야 하는지 노하우가 없었다. 그렇게 헤쳐나가다 보니 벌써 종연을 앞두고 있다.”

TV드라마와 영화로 활동하다가 데뷔 10년 차가 되어서야 연극 무대에 섰다. 이정혁이 ‘연극’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대에 항상 서고 싶었다. 매체 연기를 하며 내 뜻대로 되지 않던 부분에 대해 ‘열정’이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몇 년 전에 문득 들었다. 배우로서 전환이 필요했다. 8년 전 ‘온에어’라는 뮤지컬을 했었는데, 작품을 하면서 느꼈던 열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무대를 굳건하게 지키시는 배우도 많고, 굳이 매체에서 배우를 데려와 무대를 할 필요도 없으니까. 대본이나 책을 읽을 때 집 근처에 있는 대학교 주변 카페에 간다. 가끔 연극영화과 단체복을 입은 친구들이 그곳에 와서 연기나 작품 이야기를 하는데 그걸 보면서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런 열정을 어디서 느낄 수 있을까?’ 고민해보니 ‘연극’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게 ‘프라이드’가 될 줄은 몰랐다.”

‘프라이드’는 시대와 개인, 사랑과 정체성, 자유와 존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 1958년과 2008년을 넘나들며, 두 시대를 살아가는 필립, 올리버, 실비아를 통해 성(性)소수자들로 대변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표면적으로는 ‘성 소수자’라는 특정한 인물을 그리지만,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물었을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정혁에게 첫 연극 ‘프라이드’는 쉽지 않았다. 여러 의견이 들려왔고, 흔들린 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표현’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됐다.

“텍스트가 좋으니 자연스럽게 감정은 이만큼 쌓여있었는데, 이걸 무대에서 최대한 확장해서 보여줘야 하는 부분이 어려웠다. 나의 감정은 100인데 표현이 쉽지 않았다. 함께 연기하는 형, 누나들이 많이 도와줬다. 표현할 수 있게끔 호흡과 대사에 대해 조언해줬다. ‘잘하고 있어’ 등 좋은 말도 많이 해줬다. 결국 자신감의 문제였다. 이미 잘하는 사람들 틈에 있다 보니 안 그러려고 노력해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잃었던 적도 있었다. 연습하며 잘 안되던 부분이 어느 순간 조금씩 풀려간다고 느낀 날이 있었는데, 그날부터 조금씩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잘하고 있는지 의심된다.”

인터뷰가 시작되고 몇 분 지나지 않았지만, 이정혁은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아쉬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주변에서는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줬지만 스스로 느끼는 아쉬움이 커 보였다.

“모든 사람에게 좋을 수 없다는 걸 몰랐다. 처음에는 분명 그런 욕심이 있었다. 올리버를 보러 오신 분들이니까, 내가 정말 올리버로 잘 보인다면 모두가 좋아해 주실 줄 알았다. 그런데 보는 분들만의 올리버가 있으니 쉽지 않았다. 그런 부분을 받아들이고 맞춰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내가 만든 올리버가 무너져서 안 되겠다고 느꼈다.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수 없고, 내 것 안에서 바꿀 수 없구나’를 처음부터 알고 시작했다면 조금 더 이정혁의 올리버가 일찍 완성되었을 것 같다. 지금도 완성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부분이 아쉽다.”

‘프라이드’는 방대한 텍스트양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연극에 익숙하지 않았던 이정혁은 대본 외우기도 쉽지 않았으나, 이제 조금 노하우가 생길 것 같다고 말한다.

“(대본을 외우는) 방법이 없었다. 계속 보고, 말하고, 생각했다. 자기 전까지 떠올렸다. 혼자 연습할 때는 다 외운 줄 알았는데, 연습 때 맞춰보니까 기억 안 나는 부분도 있었다. 배우들이 다 함께 맞춰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덕분에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사가 나왔다. ‘프라이드’를 하면서 대본 외우는 노하우가 생겼다. 많이 읽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두 필립(김주헌, 김경수) 형의 목소리로 필립 부분을 녹음하고 내 부분은 비워둔 채 듣고 말하는 걸 반복했다. 좋은 방법을 찾은 것 같다.”

‘프라이드’ 속 인물들은 1958년과 2008년을 오간다.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이지만, 두 인물이 투영되며 보이는 부분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메시지가 작품의 매력 중 하나다. 이정혁은 귀엽고 발랄한 2008년도의 올리버를 ‘찰떡’같이 소화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최근까지 몰랐단다.

“2008년 올리버에 잘 어울리는지 관객과의 대화(7월 28일 6시 공연 후) 분위기를 통해 알았다. 물론 올리버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평소 표정을 풍부하게 쓰거나 감정 표현을 크게 하는 편이 아니다. 애교나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이런 부분을 연출님이 잘 꺼내주신 건지, 진짜 원래 지니고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걸 관객분들이 좋게 받아들여 주셨다. 이 부분은 초반부터 좋게 봐주신 것 같다.”

ⓒ 연극열전
ⓒ 연극열전

올리버를 표현하기 위해 가장 집중한 부분은 2008년도와 1958년도와의 크로스 부분이다. 이정혁은 두 시대의 올리버가 겹쳐 투영되어 보이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이 고민 했다.

“2008년의 올리버가 하는 행동만 봐서는 사랑스럽지 않다. 쉽게 말해 계속 바람피우고 다니는 거잖나. 마음을 줬건 다른 이유가 있건 말이다. 그거마저도 ‘얘가 왜 그럴까?’ 하고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하려면 1958년도와 대비 되어야 했다. ‘58년도에 상처가 있으니 08년도에 이렇게 되었을 거야’라고 연결되게 만들려면 최대한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통해 애처로움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출님도 ‘촉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그 말에 공감했고 올리버를 그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올리버는 필립을 사랑한다. 그런데 왜, 필립을 두고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주는 걸까. ‘잘생기고, 키도 크고, 목소리도 좋다’고 했으면서 바람을 피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물었더니 “상처를 표현하는 방법이었을 거”라고 설명한다.

“확실한 건 마음은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올리버가 58-08년 영혼이 공유된 다른 인물이라고 봤을 때, 58년도의 상처를 현대식으로 표현한 거라고 본다. 08년도는 억압되지 않고 조금 더 자유로우니까. 58년도에는 만남 자체가 힘들었을 거다. 그런데 08년도, 여전히 동성애에 대해 닫힌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과거보다는 열려있는 이 시대에 ‘나는 이런 상처가 있어’라는 표현의 자유로움이지 않았을까. 상처를 표현하는 방법이었지만,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올리버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보게 되는 걸 ‘중독’이라고 표현했다. 이정혁은 이 ‘중독’에 대해 “올리버가 가슴 깊은 상처로 인해 길을 잃은 영혼이기에 ‘중독’이라는 말을 썼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중독’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올리버는 그런 말을 해가면서까지 필립을 잡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다. 떠나가는 연인을 앞에 두면 별의별 말을 다 하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의 단어 선택이었다고 본다. 또 올리버는 ‘목소리가 들린다’고 말하는데, 이건 58년도 상처로 인해 58-08년이 겹쳐 보이는 장면 중 하나다.”

현재 이정혁이 ‘중독’된 것은 무엇인지 묻자 망설임 없이 ‘무대’라는 답이 돌아왔다.

“’무대’가 전보다 더 좋아졌다. 연습과 공연을 하면서 힘든 적은 있었지만 후회한 적은 단 한 순간도 없다. (무대의 매력이 무엇인가?)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과 살을 부대끼는 작업이다. 무엇보다 관객과 바로 호흡하니까 에너지도 크다. 지금까지 맡았던 역들은 연기에 깊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프라이드’를 하면서 연기적으로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배우로서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2008년 올리버는 필립과 헤어질까 봐 ‘코스트코 여행’도 떠나지 않은 채 집에서 전전긍긍한다. 이정혁이라면 어떻게 그런 상황을 극복했을까.

“나는 오히려 사람들을 만나는 편이다. 사실 술을 하나도 못 마신다. 주로 친구들과 커피 마시면서 수다 떠는 편이다. 만약 내가 힘든 걸 아는 친구가 있다면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 집에 돌아간 후에는 공허하겠지만, 조용하게 있지는 않을 것 같다. 평소에는 집 주변에서만 움직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라면 오히려 밖으로 나갈 것 같다.”

올리버에게는 실비아라는 좋은 친구가 있다. 많은 위로를 받고, 필립과 다시 만날 수 있게 도움도 줬다. 만약 반대의 상황이라면, 실비아가 실연을 당하고 올리버가 위로를 해준다면 어떤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

“실비아는 정말 ‘친구’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가족 그 이상의 존재다. 아마 ‘엄마’라는 애칭으로 자주 불렀을 것 같다. 그런 사람인데 이별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면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해줄 것 같다. ‘너라면 언제든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어. 왜냐하면 너는 정말 그럴 수 있는 충분한 사람이니까’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올리버는 당장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가서 잡아!’ 할 성격도 아니다. 실비아는 올리버에게 큰 존재니까 ‘좋은 사람’이라는 걸 꼭 알려주고 싶을 것 같다.”

답변하던 이정혁은 “그런데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까요? 실비아는 참 좋은 사람”이라며 실비아에 관해 이야기했다. 또 “올리버에게 실비아가 위로가 되었듯, 손지윤-신정원(실비아 역)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다. 두 배우가 모두 나에게 실비아 같은 존재”라면서 동료애를 드러냈다. 그리고 훈훈했던 ‘프라이드’ 배우들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표현했다.

“작품 연습 기간에 어머니가 크게 아프셨다. 내가 어머니를 보살펴야 해서 병원과 연습실로 출퇴근했다.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프라이드’도 감정을 많이 쓰는 극이다 보니 더 그랬다. 동료들이 걱정을 많이 해줬다. 작품 연습을 하면서도 ‘잘하고 있다’고 항상 응원의 말을 건넸다. 긍정적인 기운을 받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쉽지 않은 곳이 될 수도 있었는데 좋은 사람을 만나서 무대의 매력에 더 빠질 수 있었다. 감사하다.”

(인터뷰②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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