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프라이드' 이정혁 "연극 무대, 한여름 밤의 꿈처럼 끝나지 않기를…"
[인터뷰②] '프라이드' 이정혁 "연극 무대, 한여름 밤의 꿈처럼 끝나지 않기를…"
  • 김은정 기자
  • 승인 2019.08.09 0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라이드' 올리버는 공감해주는 사람
'표현'에서 '전달'로 확장된 고민
연극의 매력에 푹 빠져...더 많은 무대 서고픈 바람

[이뉴스데일리 김은정 기자] (인터뷰①에서 이어짐)

‘프라이드’ 무대에서는 작은 실수도 극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배우들은 애드리브도 삼가는 편이다. 그런데 반드시 관객을 웃게 하는 이정혁의 애드리브가 있다. 바로 인형 엉덩이를 만지는 실비아에게 ‘어딜 만져’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이정혁은 “순간 나온 말인데, 좋아해 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2막에서 발생한 편집장이 올리버의 클러치를 가져가거나, 바지의 지퍼가 내려가 있거나, 머리를 만졌는데 웃기게 되었던 작은 해프닝을 소개하며 짧은 환기의 시간을 가졌다.

2008년의 올리버는 프리랜서 기자가 되기 위해 잡지사에 간다. 그곳에서 만난 편집장은 무례했다. 악의는 없으나 유쾌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에서 올리버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궁금했다.

“편집장의 악의 없음은 느껴진다. 의도적 무례는 아니니까 기분 나쁜 것보다 ‘무슨 헛소리야’ 하면서 가볍게 생각한다. 올리버가 자기 말만 하는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다. 해리 삼촌 이야기를 할 때 나오는 ‘에이즈’라는 병이 올리버에게는 단순히 병으로만 치부되는 단어가 아니다. ‘혹시 나도 언젠가’라고 생각할 수 있기에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과거 인물인 해리 삼촌은 08년도의 장면이지만 58년도의 필립과 올리버가 겹쳐서 보이는 느낌도 있다.”

만약 2008년의 올리버가 2019년에 살고 있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정혁은 “필립과 동성애 결혼이 합법적인 곳에 가서 행복하게 살았을 것 같다”고 상상했다. ‘중독’은 고쳤을 것 같으냐고 묻자 “당연하다”고 말한다.

“2막 5장에 그렇게 했는데 다시 그러면 안 되지~ 고쳤다고 생각한다. 고쳐야 한다. 또 그랬다면 필립이 다시 받아줬을까? 내가 필립이면 안 받아줬을 것 같다. 올리버로서는 물론 ‘나는 자유로울 테니 넌 좀 봐줘라’하고 싶지만, ‘중독’이 고쳐졌다는 건 상처가 치유됐다는 거다. 필립을 용서한다고 말하고, ‘넌 돌고래’라고 얘기했다. ‘내 상처 다 치유됐어’라고 말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프라이드’에서 2008년은 현재와 비슷한 환경이기에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1958년은 시대적 배경부터 인물들의 관계까지 읽어내야 하는 부분이 많아 어렵다. 배우로서 1958년의 올리버를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 이정혁은 어떤 자료를 참고했을까.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방법은 인터넷이다. 1958년 영국 런던의 시대적 배경을 많이 검색하고 읽었다. 가스실의 존재와 그 이유를 알게 됐고, 더 공부했다. 또 연습 전에 제작사 측에서 자료를 많이 줬다. 시대, 동성애, 그리고 용어에 대한 자료였다. 자료를 살피다 보니 내가 알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지식을 시대에 입혀만 봐도 힘들 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런 시대였지만, 1958년의 올리버는 자신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선다. 이정혁은 올리버의 모습이 ‘필립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필립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인식하고 있었을 거다. 다만 받아들이는가 아닌가의 문제다. 올리버도 사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걸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했을 거다. ‘영혼이 길을 잃었다’는 표현도 그래서 하는 것 같다. 58년도 올리버도 자유롭지 않았고, 표현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느낀 ‘이게 정말 나구나’ 하는 환희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필립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설득의 문제라기보다 ‘당신도 나와 같은 사람이잖나. 나는 이런 환희를 느꼈어. 당신도 인정하면 똑같은 환희를 느낄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었다. 단순히 설득이었다면 이기적으로 말하지 않았을 거다. 필립이기 때문에 진짜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한 거다. 환희를 느끼게 해준 사람이 필립이기 때문에.”

올리버가 필립에게 끌린 건 어느 순간부터였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관객은 모르는, 온통 토마토 색깔로 둘러싸인 그 식당에서 올리버와 필립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단순히 ‘끌림’이라고 따지면 같은 언어 ‘아름다움’을 쓰기 시작한 때부터다. 물음표가 떴던 것 같다. ‘어?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처음이야’라는 느낌이다. 그 이후 레코드판 앞에서도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때 물음표가 두 개 떴다가, 4개월 동안 점점 느낌표로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식사 자리에서도 느낌표가 떴을 거다. ‘? → ?! → !!’ 이렇게. 필립이 내 느낌표를 다 지우려고 하니까 ‘아니다’라고 말할 용기가 생겼고, 내가 느낀 게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확신하기 위해 공원을 간다. 공원에서는 내가 아니었는데, 필립과 함께 있으면 온전히 내가 된다. ‘필립에게 느낀 것이 잘못된 게 아니구나’를 확신하고 그동안 필립과 함께하며 느낀 환희를 떠올린다. 그래서 필립에게 말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을까.”

필립, 실비아, 올리버가 함께 간 식당에서 필립이 눈을 피했다고 말한다. 올리버는 무슨 행동을 한 거냐고 묻자 이정혁은 필립을 떠올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올리버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계속 바라봤겠죠.(미소)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데, 일반적으로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운 사람이라면 계속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온화한 미소와 함께 계속 봤을 거다.”

2019년 ‘프라이드’의 가장 큰 변화는 1막 5장이다. 자극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장면의 표현 방식을 바꿨다. 폭력성이 낮아지면서 관객에게 다가오는 감정의 강도가 강해졌다. 더 깊어진 긴장감을 최고조에 달하게 하는 건 올리버다. 필립이 ‘혼란’을 분노로 발산한다면, 올리버는 이를 침착하게 어르고 달래며 설득하려 한다. 올리버를 연기하며 무엇에 중점을 두었을까.

“올리버를 치는 장면에서 순간 맞았으니까 ‘어?’ 할 수는 있지만, 필립이 올리버를 때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잘못한 사람처럼 애절하게 울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말해주는 거다. 조명이 어두워서 잘 안 보일 수도 있는데, 서로 바라보고 있을 때 두 필립(김주헌, 김경수)의 표정은 정말 다 무너져있다. 그래서 올리버의 키스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다. 의로도 있고, 다시 한번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설득의 의미도 있다. 필립은 ‘네가 좋아하는 게 이거면, 이렇게 해줄게’라는 식으로 확 돌변한다. 난 그걸 말한 게 아닌데… 필립도 사실 ‘이것으로 너랑 끝내겠어’라는 의미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잖아, 아니야 우린 아니야..’ 이런 느낌이다. 1막 5장에서 보면 필립이 말로 올리버를 이기지는 못할 것 같다. 올리버가 너무 확신에 차서 얘기를 하니까, 되돌려 보내려는 방법으로 그걸 선택한 거다. 그 지점까지 가려면 필립도 키스하는 순간 어느 정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다잡기 위해 끝까지 올라간 거다.

올리버도 결국 그 행위로 상처를 받는다. ‘정말 당신이 이렇게까지 부정한다면, 알았어. 나갈게.’ 그래서 마지막 문 앞에서 ‘안다고 생각했어’라고 말하는 게 4개월간 느낀 환희가, 환희가 아니었구나. ‘환희라고, 그걸 안다고 생각했어’라고 말한 뒤 나가는 것 같다.”

ⓒ 연극열전
ⓒ 연극열전

열린 결말의 ‘프라이드’지만 마지막에서 느껴지는 2008년 필립과 올리버의 모습에서 1958년도의 두 사람도 나란히 앉아있을 것 같다고 말하자, 이정혁은 “올리버 입장에서 필립을 다시 찾지 않았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자기 생각을 드러냈다.

“극적으로 열린 결말이라 조심스럽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올리버가 필립을 다시 찾지는 않았을 것 같다. 58년도의 실비아라면 필립을 다시 받아줬을 거다. 나는 필립이 치료과정을 못 견뎠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실비아가 필립을 품었을 거고, 올리버는 두 사람을 다시 만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야 2008년에 해피엔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1958년과 50년 차이밖에 없으니 그때 상처를 안고 끝나야 그 영혼들이 다시 만났을 때 치유하는 과정도 있고, 좋은 결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1958년 올리버는 실비아에게 볼펜을 받는다. 올리버는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끼는 볼펜이니까 없어졌다는 걸 올리버는 알고 있었다. 실비아 집에 있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 거다. 그걸 실비아가 발견하고, 돌려주러 왔다는 것에 ‘실비아에게 내 정체성을 말한 적이 없는데’ 생각하게 된다. 필립과의 만남도 실비아가 연결 해준 거잖나. 필립을 만나기 전까지는 계속 부정한 내 모습이고, 올리버로 인해 필립에게 그런 상황이 처음 생긴 거다. 그런 것들을 실비아가 다 알게 된 것이 미안하고 슬프다. 올리버가 그곳에 있었을 거라고 생각만 하던 것이 진짜라는 걸 알게 되어 놀란 것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미안함은 크다.”

1958년도와 2008년도를 관통하는 요소 중 음악, 레코드판이 있다. 쉽게 잡아낼 수 없는 연결고리이기도 하여 이정혁에게 의미를 물었다.

“58년도에는 올리버가 레코드판을 선물한다. 2008년도의 필립은 그걸 갖고 있다. 58년도의 필립은 08년도까지 소중하게 레코드판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2008년 편집장실에서도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나온다.”

이정혁이 연기하는 올리버는 1958-2008년도를 오간다. 영혼이 연결되어 있다고는 하나 사람의 성향이 극과 극으로 다르다. 시대를 오가며 인물을 표현하기에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묻자 “상대 배우들 덕분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의상 체인지가 퀵이다. 감정을 정리한다던가 일부러 굳이 그런 시간을 갖지 않는다. 다행히 다른 시대의 문을 열어주는 건 상대들이다. 2막 2장에서는 나치, 1막 4장에서는 실비아가 시작한다. 분위기를 확 전환해 준 상태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다.”

‘프라이드’에는 유독 동갑 배우들이 많다. 이정혁, 이현욱(올리버 역), 우찬(남자 역), 신정원(실비아 역) 모두 1985년생이다. 동갑 에피소드를 요청하자 “고민해야 하는 극이라…”면서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동료들에 대한 애정을 즐겁게 털어놓는다.

“네 명이 85년생인데, 정원이가 빠른 생일이라 애매하다. (이)강우 형(1984년생)이랑 친구인데, 형은 정원이랑 친구가 된 상태에서 ‘너희까지는 안돼’라고 선을 그었다. 근데 나는 4월생이라 형이랑 큰 차이는 안 난다.(웃음)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작품이라서 연습하면서도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일은 없었다. 다 처음 만난 얼굴이었는데, 동갑이라는 이유로 빨리 친해지기는 했다. 아, 현욱이의 친구와 겹치는 친구가 있다. 친구의 친구이기도 해서 현욱이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현욱이가 내 캐스팅을 먼저 알고 있었는데, 그 전에 나한테 ‘나랑 더블 하는 올리버는 형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왜 형이었으면 좋겠다고 한 걸까?) 모르겠다. 왜였을까. 같은 역을 맡게 된 다음에는 ‘네가 되어서 좋다’고 했다. 동갑이라 좋은 부분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빨리 친해졌다."

이현욱과 둘이 얼굴을 맞대며 끌어안고 찍은 사진을 봤다.

“친한 척하라고 해서 어디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이 정도면 되요?’라는 감각으로 했다.(웃음) 현욱이는 쉬는 날 가끔 만나기도 한다.”

이정혁은 연극 무대에 서며 ‘표현’에 관해 많이 고민했다. 그렇다면 올리버를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연습할 때, 그리고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쌓여있는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돼서 힘들었다면, 지금은 잘 전달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연기할 때만큼은 걱정하지 않지만 공연을 마친 후 생각하게 된다. ‘프라이드’는 신기하게 매번 감정의 차이가 생긴다. 그래서 ‘오늘 내가 느낀 이 감정이 잘 전달됐을까?’ 생각한다.”

무대의 매력에 푹 빠진 이정혁,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정해진 게 없지만 무대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쯤 어디선가 연락이 왔어야 하는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프라이드’를 통해 많이 배우고, 느끼고, 얻었다. 고마운 것도 정말 많은데 한 번으로 끝난다는 게 아쉽다. 마치 ‘한여름 밤의 꿈 같다’고 말한 적도 있다. 절대 꿈처럼 깨고 싶지는 않다. 꼭 더 늦지 않은 시기에 무대를 해보고 싶다는 게 꿈이다. (꿈인가?) 그렇다. 물론 지금 내 입장에서 어떤 작품이 들어온다고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차기작이 무대가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역할이 있는가.

“’프라이드’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같은 소속사의 노수산나 배우가 하는 ‘톡톡’을 보러 가서다. 그전에는 막연하게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었는데, 그때 현실적으로 무대를 바라보게 됐다. 소속사나 주변 반응이 어떻든 꼭 무대에 서겠다고 생각한 계기다. ‘톡톡’에서 밥 역할을 재미있게 봤다. 주변에서도 어울리겠다고 말씀도 해주셨다. ‘킬 미 나우’도 보러 갔었는데 조이 역할이 탐나면서도 엄청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작품은 많으니 여러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다.”

어느새 마지막 질문이 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프라이드’ 관람 독려 한 마디.

“요즘 마음에 고민 없는 분은 없는 것 같다. 그런 고민을 안고 오셔서 ‘프라이드’를 본다면 해결책까지는 아니지만 작은 위로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한다. 극이 어깨를 토닥여주는 느낌을 받으실 거다. 나 역시 올리버를 연기하며 정말 많은 위로를 받았고, 항상 누군가 어깨를 어루만져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꼭 오셔서 고민을 털어내고 가셨으면 좋겠다. 또 공연장이 무척 시원하다.(웃음)”

연극의 매력에 푹 빠진 배우 이정혁이 출연하는 연극 ‘프라이드’는 오는 8월 25일까지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