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0 02:00 (일)
[인터뷰①] 아직은 미완성, 그래서 더 기대되는 '킬롤로지' 은해성
[인터뷰①] 아직은 미완성, 그래서 더 기대되는 '킬롤로지' 은해성
  • 김은정 기자
  • 승인 2019.10.01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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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롤로지' 은해성, 데뷔 3년차 신인 배우
게임 속 잔인한 살인 방법으로 죽은 10대 소년 데이비 역
독백 형식의 구성, 방대한 텍스트로 쉽지 않은 도전

[이뉴스데일리 김은정 기자] 아직은 미완성(未完成), 퍼즐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가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기대되는 건 완성작을 만들어 내는가가 아닌 어떤 그림을 보여줄 것인가다. ‘연기를 하는 것’ 자체에 눈망울을 반짝이며 이것도 저것도 해보고 싶은 그는 해맑게 스스로를 시험대 위로 올려두고 고난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지치지 않는다.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응원하게 되는 배우 은해성의 이야기.

은해성은 지난 8월 31일부터 대학로 아트원씨어터2관에서 개막한 연극 ‘킬롤로지’(Killology)에 출연 중이다.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살인게임 ‘Killology’과 같은 방법으로 살해된 소년 데이비와 아들을 잃고 더 이상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복수를 결심하는 알란,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살인게임을 개발해 거대한 부를 축적한 개발자 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대두되고 있는 잔혹한 범죄와 미디어의 상관관계 및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시사한다.

서로 다른 상처를 가진 세 인물이 등장하여 각자의 독백을 통해 사건과 감정을 쏟아 내며 관객과 소통하는 독특한 구조로 주목받은 ‘킬롤로지’에서 은해성은 데이비 역을 맡았다. 데이비는 부모의 무관심과 학교 폭력으로 상처받은 피해자이면서 자신보다 약자에게는 서슴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이기도 한 10대 소년이다.

이번 시즌 유일하게 오디션의 경쟁률을 뚫은 배우이기에 ‘킬롤로지’ 무대가 더 남다를 터. 약 한 달간 데이비로 무대에 선 소감을 물었더니 짧은 탄식과 함께 “힘들다”는 답을 건넨다.

“힘들다. (왜 힘든가?) 데이비의 삶이 순탄치 않아서다. 데이비는 약간 허세가 있고 인생에 굴곡이 있는데 이것을 흥미롭게 전달해야 한다. 또 데이비 안에는 감정이 있는데 그걸 다 드러내지 않아서 표현하는데 쉽지 않다.”

자신의 연기 스승인 배우 나경민의 소개를 통해 오디션을 알게 되었다는 그는 대본을 처음 받은 순간부터 이 작품에 욕심이 났다고 말한다.

“정말 작품을 하고 싶었다. 오디션 전에 대본을 받았는데 무슨 말인지 솔직히 모르겠더라. ‘데이비가 어떻게 된 거지?’ 생각하면서 다음 날 오디션을 치렀다. 운이 좋게 합류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은해성에게 ‘킬롤로지’는 두 번째 연극 도전이다. 베테랑 배우에게도 쉽지 않은 독백 구성의 작품을 배우 데뷔 3년 차에 만나게 된 그는 첫 공연부터 쉽지 않았다.

“’킬롤로지’ 첫 공연을 너무 못했다. ‘내가 왜 이렇게 못했지?, 왜 그렇게 떨었지?’ 생각도 했다.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형식이다 보니 의지할 곳이 없었다. 이전에 했던 연극 ‘형제의 밤’에서는 상대 배우에게 의지하고 집중할 수 있었는데, 이 작품은 다른 개념이라 확 긴장됐다. (원래 긴장을 많이 하나?)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덜덜덜 떨다가 숨을 한번 크게 쉬고 나간다. 티가 안 난다고들 하지만 내면에서는 요동치고 있다.”

독백으로 이어지기에 선배 배우와 함께 무대에 서는 것도 크게 체감하지 못한다는 은해성은 “혼자 하는 기분이라 몸이 얼어있고 더 긴장된다”고 털어놓는다. 한 달이 지나서 조금씩 그 긴장은 풀려가고 있지만, 여전히 몰입을 깨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혼자 말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몰입하기 쉽지 않다. 첫 공연 때도 대사가 날아가서 한 줄 한 줄 잡아가면서 겨우 했다. 연습으로 몸에 밴 건 있어서 입에서 대사는 나오는데, 정말 너무 긴장됐다. 생각과 입이 따로 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 아로마 테라피도 바르면서 진정하기 위해 물리적 노력을 한다. 무대에 딱 들어가서는 ‘나는 데이비다’ 생각하며 최선을 다한다. ‘내가 (데이비로서) 하고 싶은 말을 최대한 관객에게 잘 얘기해주고 오자’ 생각하면서 마인드컨트롤을 한다.”

대사에 대한 부담감은 비단 신인인 은해성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니다. 모든 배우가 대사를 외우고 있는 풍경이 ‘킬롤로지’에서는 당연하다. 쉬는 날에도 대사 외우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그는 “45분간 걸으면서 대사를 외우면 내 분량이 끝난다. 시계를 차고 타임워치를 누르면서 ‘아빠는 톡 꼈어요~’로 시작해 대사를 외우고 있다”면서 작품에 푹 빠진 모습을 보였다.

ⓒ 연극열전

재연으로 돌아온 ‘킬롤로지’에서 크게 달라진 점 두 가지는 무대 위에 배치한 기둥과 인터미션이다. 박선희 연출은 기둥을 “배우들을 위한 피난처”라고 설명했다. 초연 당시 모든 배우는 조명이 꺼진 무대에서도 캐릭터로 존재하며 관객의 시선을 받았는데, 그것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져 숨을 장소를 만들었다는 것. 하지만 좌석에 따라 기둥 뒤 배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은해성은 털썩 앉아있거나, 고통스러워하기도 하며 기둥 뒤에서도 연기를 이어간다.

“기둥 뒤에서는 폴과 알란의 대사를 듣는다. 텍스트를 다 알고 있지만 들으면서 ‘아빠가 저랬구나. 하 용쓴다. 참 나 어이가 없네’ 이런 생각을 데이비로서 한다. 두 사람이 내가 폭행당하는 영상을 볼 때면 뒤에서 고통스러워한다.”

데이비의 서사는 처음 보는 관객에게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현실의 모습과 상상 속 이야기가 함께 무대 위에서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 지점만 분리한다면 극은 조금 더 명확한 형체를 갖게 되는데, 그 복잡한 구성을 통해 데이비라는 인물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나도 복잡했다. 무대 위에는 데이비, 알란, 폴 이렇게 세 사람이 있는데 ‘이 장소는 어디고, 앞에는 누가 있는가?’ ‘데이비는 죽었는데 어떻게 다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천국 가기 전인가?’ 등 여러 생각을 했다. ‘천국에 가기 전에 허심탄회하게 고백하고 이야기를 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데이비는 자신의 삶을 나열해서 설명한다. 그 장소는 어딘지 모를 곳이지만, 우리에게는 관객이 있다. 관객에게 내 (데이비의) 이야기를 해주는 거다. 데이비로서 해주고 싶은 말은 마지막 말이다. ‘16살 집에 돌아가던 길에~’ 라고 하는 부분인데, 아빠인 알란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아빠, 이건 몰랐지?’ 하는 생각으로 가운데 앉아있는 알란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서 말을 한다. ‘상상 속에서 날 그렇게 그렸지만, 현실의 난 이런 일을 당했어. 그건 내가 보지 못했던 미소였어!’라고 알란에게 말하는 동시에 관객에게도 말하고 있다. 데이비가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말해주는 거다. 데이비가 어떻게 보여지길 바라는 바람보다 관객이 받아들이는 방식대로 가져가시면 좋겠다.”

장난기 많은 10대 소년처럼 보이는 데이비지만 이야기 속 내용은 비극적이다. 은해성은 살짝 경쾌함마저 느껴지는 목소리 톤으로 데이비를 드러내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다.

“데이비가 당한 고통, 상처, 폭력을 드러내면서 굳이 심각하게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끔찍하게 당했던 걸 상상하면서 들려주기보다는 ‘내가 그랬고, 그랬어’ 담담하게 전하고 싶었다. 연출의 디렉션도 있었고 내가 그 부분에 동의해서 심각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연습기간 동안 매일 연습실에 출근했다는 은해성. 작품에 많은 의문을 품고 궁금한 점을 하나씩 풀어가며 데이비와 극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여전히 더 깊은 이해를 위해 그 끈을 놓지 않는다.

“관객분들은 ‘마지막 부분’만 놓치지 않으면 된다. 알란이 계속 상상하고 데이비를 만들어 내면서 이야기가 꼬이고,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하다가 풀어지기 때문이다. 데이비는 죽었다. 하지만 여전히 헷갈리는 부분은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짜 삶이고 어디가 온전히 알란의 상상인지, 또 메이시는 진짜 죽은 건지 모두 알고 싶다. 원작 작가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모를 것 같다. 계속 고민할 것 같다.”

메이시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데이비의 안전을 위해 집에서 나가지 못하게 막고, 끝까지 데이비의 손길을 느끼기 위해 힘겹게 꿈틀거리던 메이시. 과연 메이시는 데이비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메이시는 유일한 친구였다. 데이비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엄마도 삶에 지쳐있다 보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데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것도 이해한다.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데 메이시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죽었으니 데이비가 어디에 표출할 수 있는 곳도 없었을 것 같다.”

은해성이 생각하는 데이비의 학교생활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했다.

“데이비가 사교성 좋은 아이는 아니었을 것 같다.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 없고, 메이시랑만 소통하는 아이. 선생님이 다가오는 것도 그 자체로 느끼지 못하고 삐뚠 시선으로 보고 표현하는 걸 봐서는 아웃사이더 같은 성격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무대 위 데이비는 아웃사이더로 안 보인다.) 데이비가 관객 앞에서 아웃사이더가 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부모의 무관심은 데이비가 겪은 폭력과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자신을 무관심 속에 방치한 어른을 보는 데이비의 시선을 물었다.

“데이비가 어렸을 때는 그런 엄마를 이해 못 했을 거다.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엄마는 듣지도 않는다. ‘그럼 나는 도대체 어디에 내 얘기를 해야 하는 거지? 아 내 삶은 쉣이다’ 이런 생각을 했을 거다. 관객에게 이야기하는 시점의 데이비는 엄마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다 이해하고 말한다. 그때와 지금의 데이비는 다르다. 그런데 당시로 돌아가서 표현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 감정으로 나타내는 지점, 현재와 과거의 중간지점이 있다.”

잔인한 방법으로 게임처럼 죽음을 맞이한 데이비를 연기하며 은해성이 느끼는 사회문제 폭력에 관해 묻자 “당연히 안 좋다”고 즉답한다.

“데이비의 상황에서 보자면, 어른에게도 사정이 있었을 거다. 데이비의 엄마 캐롤도 아이를 아빠 없이 혼자 길러야 했다. 당연히 무슨 일을 해서라도 경제적으로 책임을 지려고 했을 거다. 여러 일을 감내하며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닌 사람도 있다. 최선의 방법은 돈도 벌고, 사랑도 나누면서 사는 거지만, 그럴 수 없어서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또 돈이 있어도 최선으로 살지 못하는 가정도 있으니 어렵다. 우선 아이의 폭력에 있어서는 부모가 될 자격을 먼저 갖고 아이를 갖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②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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