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0 02:00 (일)
[e여행정복-부산편④] 부산의 애환이 담긴 중구 40계단
[e여행정복-부산편④] 부산의 애환이 담긴 중구 40계단
  • 김유정 기자
  • 승인 2019.10.02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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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뉴스데일리 김유정 기자] 한국 전쟁 시 피난민의 애환과 향수가 담겨있는 유서 깊은 40계단 주변을 50~60년대 분위기를 담은 설치물을 조성한 40계단 주변을 40계단 문화관광테마거리로 부른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탄 40계단과 그 주변은 소박한 낭만을 아직도 간직한 곳이다. 

하지만 문화관광테마거리라는 거창한 이름에 대형규모의 관광지를 기대하고 방문했다는 여행객의 볼멘소리를 듣게 되기도 했다. 관광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압감이 되려 이 곳이 가진 매력을 반감시키는 것만 같아 아쉽다. 40계단을 비롯해 이 주변 거리는 전통있는 음식점을 비롯해 청년들이 아기자기하게 운영하고 있는 카페와 음식점이 감각있게 자리한 소소한 매력과 역사와 문화를 가진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옛 부산역(현 중앙동 무역회관자리)을 상징하기 위해 기찻길이라는 주제로 40계단 앞쪽으로 40계단광장과 건널목광장을 꾸며놔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조형물을 차례로 감상하는 것이 가장 좋다. 

물동이진 어린 소녀와 지금을 거의 보기 어려운 뻥튀기 아저씨와 아이들, 젖물리는 어머니와 울고 있는 꼬마 등 사실적으로 재현된 조형물을 찬찬히 살피고 있으면 힘들었던 그 시절을 지나온 부모님들이 자랑스럽고 고맙게 느껴진다. 또 전혀 알 수 없는 그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만 같아 신기한 마음도 든다. 가운데 작은 찻길이 나 있는 탓일까. 추억의 모습의 조형물들이 주차된 차들 때문에 제대로 감상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의 거리가 좀 더 매력적이려면, 깔끔해지려면 불법 주차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동행에 의견에 적극 동의하게 되는 때였다. 이런 거리마저 불법 주차된 차들 때문에 감상을 방해받게 되다니. 안타깝다. 

기찻길로 형상된 길 건너편은 바닷길로 피난민을 실어 나르던 부산항을 상징하기 위해 바닷길이라는 주제로 40계단 문화관 앞쪽으로 소라계단과 선착장 광장을 설치했다. 양 옆 길을 왕복해서 걸으면 40계단 주변은 거의 다 둘러보는 것이나 다름 없다. 

 

아래를 둘러보고 계단을 오르면 인쇄소 거리가 나온다. 중앙동은 크고 작은 인쇄소와 지역 출판사들이 자리해 문인과 예술가들이 드나들며 문화를 선도하던 때가 있었다. 예전의 명성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인쇄소 거리의 명맥을 유지하는 인쇄소를 볼 수 있으며 300 여명의 예술가들이 창작하는 공간인 원도심 창작공간 또가또가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원도심의 빈 상가를 젊은 창작가들에게 안정된 창작공간 제공과 중앙동 일대의 문화적 부흥을 이끌기 위해 시작된 또가또가는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도 몇몇 있으니 참여해보는 것도 좋다. 예술가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공간으로 골목마다 예술적인 분위기가 가득해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니 작은 골목도 놓치지 말고 꼼꼼하게 걸어보자.

40계단 위쪽으로는 복병산 벽화골목이 있는데 전국에 퍼질대로 다 퍼져 조금은 식상한 벽화골목이지만 40계단과 인쇄소 거리와 어울려 있으니 시간이 여유롭다면 한바퀴 둘러보는 것도 좋다.

 

국방색 모포가 세탁소에 가득 걸려있다. 40계단 테마거리 중앙에 위치해 있어 이미 눈에 띄지만 세탁소에 옷보다 모포가 더 많이 걸려있어서 중앙세탁소는 한눈에 확 들어온다.

궁금한 것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기자정신이 발동했다. 호기심이 가득해 한참을 바라보다가 중앙 세탁소 사장님께 말을 걸었다. 

“사장님,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여기 왜 이렇게 모포들이 많이 걸려있어요?”

단순한 호기심과 궁금함 때문에 건넨 질문에서 생각지도 못한 답변을 듣게 되었다. 

“불법 체류자들이 사용했던 모포에요. 정기적으로 세탁하는데 그걸 우리 세탁소에서 맡아서 하고 있어요.”

외국인 노동자들은 합법적인 절차로 비자를 받고 입국해 일을 하다가 허용된 기간동안 일한 후 다시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은 오랫동안 일하기 원하지만 세상일이 원하는대로 뜻하는 대로 안될터. 그렇기 때문에 적발되면 강제추방돼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지만 조금 더 몰래 머무를수록 많은 돈을 벌게 된다는 사실에 불법 체류자의 신분을 어쩔 수 없이 유지하게 된다. 

그러다 적발되면 며칠안에 한국에서 강제 추방 당하게 된다. 적발된 후 떠날때까지 저 모포를 덮고 생활하는 것이다. 몇몇 외국인 노동자는 언젠가 강제추방될 것을 대비해 언제든 떠날 준비를 미리미리 해두기도 해 담담하게 정리해 떠난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그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 그 절차의 마지막에는 모포의 세탁이 이뤄지는 것이다. 피난민들이 정착하고 힘들게 살았던 때가 불과 60여년 전인데, 40계단은 그런걸 기리기 위한 장소인데 지금 여기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일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호주에서 어학연수를 한 적이 있었다. 말이 좋아 어학연수지 조금 긴 여행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영어를 배우러 간 목적도 있었지만 부모님을 떠나 혼자 새로운 세상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서도 떠났다. 

그 곳에서 만난 우리나라 친구 중에 몇몇은 계속 머물며 살고 싶어하기도 했다. 심지어 내 친동생도. 우리나라보다 더 좋은 환경을 가진 나라임에는 분명하지만 삶의 터전으로서 이 곳을 택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또 스스로를 생각할 때는 유학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우리를 보는 건 우리가 동남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아 충격을 받은 적도 있었다. 일단 법으로 보장된 시급을 받기는 참 어렵다.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잠시 머물다 갈 사람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막연히 우리나라보다 더 평등하고 합리적일 것 같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그건 자국민에게만 해당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처럼.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시내에서 계란세례와 욕을 들었다는 친구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조금 늦은 시간 공원을 가로 질러 집으로 향하는 나를 범죄자처럼 두려워하는 백인 아주머니가 겁에 질려 뛰어가던 적도 있었다. 

물론 즐거운 시간들이 더 많았다. 영어가 서툰 나를 위해 차근차근 영어도 알려주고 밥도 술도 사주고 나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찾아준 친구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도 없는 맑고 푸른 바다와 자연, 책이나 텔레비전에서만 봤던 건축물을 직접 눈으로 본 경험, 학교에서 배운 10년보다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해 실력이 늘었다는 점, 모두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외국에서 살아봄으로서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잠시 경험해 비겁하지만 평생 이방인으로, 불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해 원하는 공부만 하고 미련없이 떠났던 것 같다. 

그 경험 후에는 해외는 더 나은 삶의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여행을 떠나 즐기는 곳으로만 자리잡은지도 모르겠다. 여행으로 잠시 머물며 그 속살을 들여다 보지 않는다면 충분히 즐거운 곳이니까. 역시 즐거운 것이 삶이 되면 마냥 즐거울 수는 없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에서 머무는 그들에 대한 시선 역시 나부터라도 다르게 가지려고 노력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그들도, 그곳에 머물렀을 때의 우리와 같으니까 말이다. 

모포에 관한 사연을 듣고 나니 그 시절이 떠올랐다. 또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 관한 시선을 깨닫고 다시금 놀란다. 다를 뿐인데 우열을 가리고 있던 건 아닌지.

모포가 그들을 덮어준 만큼 우리가 그들을 따뜻하게 대해주진 못했더라도 마지막을 함께 했던 모포 때문이라도 한국을 따뜻하게 기억해줬음 하고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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