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공연리뷰] 끝나지 않은 기다림… '귀환' 지금 우리가 할 일에 대하여
[e공연리뷰] 끝나지 않은 기다림… '귀환' 지금 우리가 할 일에 대하여
  • 김은정 기자
  • 승인 2019.11.2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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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 다룬 軍뮤지컬 '귀환'
현재로 이어진 과거와 끝나지 않은 기다림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이야기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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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뉴스데일리 김은정 기자] 현재로 이어진 과거, 철학으로 관통한 시대적 초상.

붉어지는 눈시울과 뜨거워지는 가슴, 요동치는 감정 사이에서 눈을 뜨는 이성.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이야기.

지난 10월 22일부터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는 육군 창작뮤지컬 '귀환(부제: 그날의 약속)'이 공연되고 있다.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전작 '신흥무관학교'로 11만 관객 동원의 흥행기록을 세운 육군본부의 두 번째 뮤지컬이다.

민족 역사상 가장 가슴 아픈 6.25전쟁이 남긴 미수습 유해는 13만 3천여 위다. 유해발굴 사업을 통해 발굴한 유해는 1만 여위. 12만 3천여 위의 호국 영웅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귀환'은 더 늦어지면 안 되는 유해발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고귀한 희생으로 현재의 우리가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제작됐다.

'귀환'은 제작 소식을 전할 때부터 큰 화제를 몰고 왔다. 현재 군 복무 중인 많은 스타들의 참여 때문이다. 엑소 시우민(김민석)부터 샤이니 온유(이진기), 빅스 엔(차학연), 인피니트 김성규-이성열, 워너원 윤지성, 조권 등 이름만 들어도 함성이 터져 나오는 아이돌이 출연자에 이름을 올렸다. 이 때문에 티켓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가 되고 불법 암표가 성행하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해 작품 외 이슈로 시끄러웠다.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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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직접 '귀환'을 관람하고 보니 다른 잡음은 들리지 않았다. 작품이 품고 있는 현재와 맞닿은 이야기와 철학적 표현은 여느 상업적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꼼꼼했다. 무엇보다 '전쟁은 영웅놀이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며 기다림과 기다림이 만나는 유해발굴, 돌아오지 못한 전사자는 과거에 지난 일이 아닌 현재의 이야기라는 것을 나타낸 구성은 그들을 기억하는 생존자가 아직 남아있는 지금 이 시점에 최대한 많은 인원을 가족의 품으로 모셔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그려낸다.

6.25전쟁과 유해발굴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가장 첫 장면부터 강렬함이 느껴진다. 태극기가 감싼 호국용사들의 유골과 이를 소중하게 지탱하는 육군장정의 모습은 현재 해야 할 일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특혜 의혹' 등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는 가운데 '왜 육군에서 뮤지컬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생겼지만, '신흥무관학교'과 '귀환'은 확실히 육군이 아니면 담아낼 수 없는 교훈적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신흥무관학교'가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여 애국심을 고취시켰다면, '귀환'은 나라를 위해 기꺼이 전쟁터로 뛰어든 조상들의 고귀한 희생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현재의 우리가 할 일을 상기시키며 관심을 유도한다. 

이번 작품은 '유해발굴'이라는 소명을 김승호라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조명했다. 극 초반에 보여지는 승호와 손자 김현민의 관계는 전쟁과 후유증, 그리고 유해발굴이 먼 조상이 아닌 누군가의 할아버지의 이야기라는 시각을 갖게 해 거리감을 좁힌다. 또 과거부터 자연스럽게 연결된 현재는 '지금!'이라는 시의성을 부여하며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일이라는 걸 쉽게 깨닫게 한다.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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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구체적으로 차근차근 흘러간다. 현재와 과거가 쉽게 연결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손자 현민을 통해 비추는 현재부터 꾹꾹 담아가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현민의 평범한 대학 생활과 축제 등을 통해 우리가 평화롭게 누리고 있는 것들을 사실적으로 비추고 관객 자신을 대입할 수 있게 한다. 영화 '인디아나존스' 패러디 장면은 뮤지컬 공연이 낯선 관객에게도 재미를 선사하며 흥미를 돋우는 동시에 전쟁을 영화의 한 장면쯤으로 떠올리는 얕은 인식을 지적한다.

할아버지 승호의 소년 시절로 시점이 바뀐 '귀환'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소설 '데미안'으로 작품의 결을 섬세하게 조직해간다. '데미안'이 관통한 김승호, 이해일, 이해성, 오진구의 서사는 단순히 전쟁 발발로 징병 된 소년들의 이야기를 넘어 전쟁을 겪는 인간의 내면과 그들의 관계를 더 깊고 철학적으로 표현한다.

'데미안'은 열 살 소년 싱클레어가 20대 청년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다. 친구 데미안과 만난 후 자신의 무의식과 내면을 일깨우는 과정이 철학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성장의 과정이란 누구에게나 아프고 괴롭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융 심리학의 영향을 받은 심층 구조를 지닌  이 책은 실제로 1914년에 일어나 1918년에 종결된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젊은이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귀환'에서는 '데미안' 속 명문장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려는 것, 난 그것을 살아 보려 했을 뿐이다" 등을 인용하거나 차용해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해일의 넘버 중 "나는 너에게 데미안이 아니었지만, 너는 나에게 싱클레어였다"는 가사는 해일과 승호의 관계를 드러내며 전쟁 전과 후 변화한 상황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한다. '데미안' 이야기는 승호의 소년 시절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소설 내용을 안다면 조금 더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작품 속 인물의 대사와 넘버 가사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전쟁을 다루다 보니 전투 장면이 꽤 많다. 하지만 전쟁의 긴장감을 전달하면서도 굳이 잔인함을 부각하지는 않았다. 자극적 장면이 아닌 삶을 향한 사투, 전쟁 속에서 그들이 취했을 태도와 생각을 드러내며 한없이 불안하고 두려웠을 그 시간을 비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투영웅을 더 기다리게 할 수 없다. 삶과 죽음을 넘어 현재의 존재에 집중하며 계속된 기다림을 이어온 그들을 하루빨리 가족의 품에 돌아가게 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의 할 일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빈틈이 없었다. 김승호 역 김순택은 디테일을 살린 연기로 인물을 입체적으로 나타냈다. 과거 김승호 역 시우민은 전쟁 전 무던하고 밝은 성격에서 전쟁 후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살아남는 자의 아픔까지 폭넓게 감정을 표현했다. 이해일 역 이재균은 안정된 연기로 극에 무게감을 부여했고, 해일의 쌍둥이 동생 이해성 역 최수진은 단단하게 캐릭터를 구축하며 전쟁 속 고뇌를 잘 드러냈다. 오진구 역 이성열은 에너지 있는 연기를 펼쳤다. 김현민 역 고은성은 노련하게 무대를 종횡무진 오가며 초반 분위기를 장악했고, 최우주 역 김성규 또한 쉽지 않은 동선의 액션을 유려하게 소화하며 극에 힘을 실어주었다.

화려한 배우들과 실력있는 제작진(연출 김동연, 작곡 박정아, 극작·작사 이희준 등)이 함께 만든 육군 창작뮤지컬 '귀환'은 재미와 감동은 물론 뜻깊은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 오는 12월 1일 서울 공연을 마친 후 광주, 성남, 대전, 대구, 부산, 수원에서 지역 투어 공연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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