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공연리뷰] 소극장 사극의 신선한 재미 '경종수정실록'
[e공연리뷰] 소극장 사극의 신선한 재미 '경종수정실록'
  • 김은정 기자
  • 승인 2020.01.08 1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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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0대 왕 경종의 이야기 그린 창작 뮤지컬 '경종수정실록'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 역사적 인물 입체적으로 표현
아쉬움 남겼지만 신선한 재미 선사
ⓒ 뉴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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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뉴스데일리 김은정 기자] 호기심 자극한 소극장 3인극 사극 창작 뮤지컬 '경종수정실록' 아쉬움 남겼지만 신선한 재미 선사.

장희빈과 인현왕후, 조선 시대를 그린 역사물 중 여러 번 콘텐츠로 만들어진 인물로 손꼽힌다. 하지만 장희빈의 아들이자 조선 20대 왕인 경종은 크게 부각된 적이 없다.

지난 10월 27일부터 대학로 티오엠 1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경종수정실록'은 당쟁의 대립이 계속되는 조선에서 숙종의 첫째 아들이자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 왕위를 노리는 연잉군(훗날 영조) 그리고 두 형제의 모습을 기록하는 가상의 인물 홍수찬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경종(景宗)은 많은 업적을 남긴 조선 19대 왕 숙종(肅宗)의 아들이다. 숙종은 대동법 시행, 상평통보 주조, 토지사업 추진 등 여러 역사적 업적을 남긴 이로 강력한 왕 중 한 명이다. 유능한 아버지를 둔 경종은 30년간 세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숙종의 승하로 왕위를 물려받았지만 몸이 약했고, 당시 자신을 지지하던 소론과 견제하던 노론의 세력 다툼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경종은 노론이 지지하던 숙빈 최씨의 아들 연잉군과 좋은 사이를 유지했고. 친어머니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사이가 좋지 않았음에도 양어머니인 인현왕후를 극진하게 모셨다. 결국 경종은 죽음을 맞이하는데, 여기에는 연잉군이 죽였다는 설과 함께 여러 야사가 존재한다. 작품에서는 연잉군이 준 독이 든 차를 스스로 마시는 것으로 나온다.

배우 에녹, 성두섭, 정동화, 신성민, 박정원, 홍승안, 김종구, 정민, 주민진의 출연으로 캐스팅 공개부터 화제를 모은 '경종수정실록'은 소극장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사극 장르에 3인극의 형태로 궁금증을 자극했다. 지금까지 드라마, 영화 등에서 보던 사극에는 막대한 자본과 인원이 투입되어 만들어 진 것이 보통이었고, 뮤지컬에서 만날 수 있었던 역사물 또한 15명 이상의 배우가 무대를 채웠기 때문에 소규모 공간과 인원으로 표현하는 사극에 대한 기대는 높아졌다.

그러나 창작 초연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아쉬운 점이 많았다. 우선 이야기에 깊이가 없었다. 작품이 담은 이야기는 포털사이트에서 경종을 검색해 나오는 정보의 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역사를 소재로 하는 많은 작품은 왜곡에 항상 주의해야 하므로 상상력을 더하기 조심스럽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뮤지컬이기에 시도해볼 수 있는 도전의 부재는 아쉬움을 남긴다.

ⓒ 뉴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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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3명의 배우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오히려 인물의 고뇌가 깊이있게 드러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온전히 배우들이 힘으로 끌어낸 감정일 뿐 대본의 탄탄함이나 연출의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사극이라는 특징을 지닌 작품이지만, 인물의 갈등과 관계적 짜임새에 특색이 없는 전형적 공연과 다를 바가 없다. 결국 관객이 파고들어 재미를 찾지 않으면 별다른 감흥을 느끼기 어려운 극이 되었다.

사극의 핵심은 정치적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경종 시대에는 노론과 소론으로 나누어 당파 싸움이 심했던 시기다. 여기에 아버지인 숙종과 친어머니 장희빈, 양어머니 인현왕후, 숙빈 최씨의 아들 연잉군(훗날 영조)까지 관련된 인물은 풍성했다. 이것을 3인극으로 축소하다 보니 신하들의 논쟁이나 치열한 자리 뺏기 싸움은 전해 듣는 것으로 그쳐야 했고, 이로 인해 영향받는 경종과 연잉군의 관계는 긴장감을 드러낼 명분이 부족했다.

ⓒ 뉴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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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해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 것은 참신했다. 경종의 곁을 지키는 홍수찬은 가상으로 만든 캐릭터로 숙종이 일으킨 사화에 남인 출신 아버지가 연루되어 죽은 후 경종의 도움으로 생활하는 경종의 20년지기 벗이자 스승이다. 무대 한편에 앉아 기록하는 홍수찬 덕분에 이 작품은 '기록의 이야기' 즉 역사성을 띠게 되었고, 숙종으로 분하면서 선사하는 또 다른 모습은 극적 재미를 부여했다. 

'경종수정실록'은 현재 대학로 인기 작품 중 하나다. 주요 티켓 판매처에서의 후기 점수도 높고, 약 2개월 반의 공연 기간 대부분의 객석은 채워졌다. 그 바탕에는 배우들의 열연과 인물의 마음을 잘 담아낸 넘버가 있었다. 이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은 이미 연기력을 입증한 믿고 보는 배우들이다. 드러나지 않는 서사까지 녹여 섬세하게 표현한 감정은 매끄럽지 못한 장면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고, 역사 전체를 보여주기보다 인물 감정에 집중한 작품이었기에 배우들의 표현력은 곧 내용 전개로 이어졌다.

극 전체를 보기보다 배우 한명 한명에 집중해서 보는 것에서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이 작품에서 '나를 꿈꾸게 하라' '하얀무지개' '왕이 되소서' 등의 넘버는 캐릭터의 마음을 잘 드러내며 시너지 효과를 냈다. 작은 공간을 꽉 채운 무대 세트 또한 군더더기 없이 의미를 담고 활용성을 높이며 보는 재미를 선사했다.

ⓒ 뉴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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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초반부터 지적을 받아온 의상은 수정, 보완되었지만 여전히 아쉽다. 무엇보다 관객들이 집중해서 공연을 보고 있는데 무대 뒤에서 들려오는 '찌이이익' 소리는 몰입 방해는 물론 실소를 자아냈다. 의상을 빨리 갈아입으려면 필요한 장치인 건 이해하지만 조용한 분위기에서 유난히 크게 들려오는 벨크로 테이프 떼는 소리는 아쉬운 오점이 아닐 수 없다.

창작 뮤지컬 '경종수정실록'는 소극장에서 볼 수 있는 사극이자, 역사적 조명을 받지 못한 경종의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충분히 신선하다. 1월 12일 초연 무대의 막을 내리는 만큼 돌아오는 다음 시즌에는 한층 발전한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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