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김히어라 "인생은 삼세판, 삼연 '팬레터' 더 재미있다"
[인터뷰①] 김히어라 "인생은 삼세판, 삼연 '팬레터' 더 재미있다"
  • 김은정 기자
  • 승인 2020.01.10 16: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뮤지컬 '팬레터' 히카루 역 김히어라
'히어라카루' 별명 생길 정도로 뛰어난 연기 선사
새로 합류한 배우들과 함께한 삼연의 변화

[이뉴스데일리 김은정 기자] 독특한 분위기를 지녔다. 여러 가지 매력을 풍기면서도 그 안에 자신은 굳건하다.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기에 다시 보고 또 찾게 된다. 성장이라는 단어보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당차고 솔직한 배우 김히어라의 이야기.

배우 김히어라는 지난 11월 7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개막한 뮤지컬 ‘팬레터’에 출연하고 있다.

1930년대 경성 신문사를 배경으로 한 '팬레터'는 당대를 풍미한 실제 문인들 이상과 김유정 등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이와 함께 역사적으로 실재한 9인회를 7인회로 바꾸고, 문학 지망생 정세훈의 또 다른 모습 히카루를 등장시키며 모던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느껴지는 예술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발휘한 흥미로운 사건으로 관객을 매료했다.

김히어라는 세훈의 다른 인격 혹은 ‘뮤즈’의 존재로 볼 수 있는 히카루 역을 맡았다. 약 두달 간 ‘팬레터’ 무대에 선 그는 “이번 시즌은 길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정말 빠르다. 매회 소중하게 무대에 서고 있다”고 짧은 소감을 전했다.

지난 2016년 초연 무대부터 이번 삼연까지 그는 4년간 3번 히카루를 연기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며 느낀 인물의 달라진 점이 있는지 물었다.

“삼연에 오면서 세훈이와 가까워진 느낌이다. 2017년 재연 때는 히카루로 크게 확장하며 입체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히카루가 세훈으로 다가가 대사하는 면이 많아졌다. 같은 작품에 같은 배역인데 이렇게 달라지는 것이 신기한 경험이다.”

삼연 무대 위 히카루는 재연과 달라졌다. 존재감과 에너지로 가득하고, 지배욕도 언뜻 보이며 이전보다 강해진 느낌이다. 연기적 면에서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는지 궁금했다.

“재연 때 내가 생각한 히카루는 태어나면서부터 악(惡)한, 욕망의 존재다. 세훈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그에게 없는 모습을 지닌 인물로 포커스를 맞췄다. 이번 시즌 부각되고 있는 폭력적으로 비쳐지는 스킨십도 마음이 있어서 쓰는 에너지인데, 재연 때는 세훈이 안중에 없었다. ‘너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아. 네가 설득되든 말든 내 마음대로 할 거야’라는 마음이 컸다. 삼연으로 오면서 새로 합류한 배우들과 만나면서 생각하게 된 부분도 많고 연습을 하면서 생긴 부분도 있다. 해진 선생님을 볼 때 세훈의 다른 면으로서 보기도 하는데, 히카루가 세훈이 가진 욕망을 투영해 나왔다고 생각하니 그를 대하는 태도가 훨씬 세지고 부딪히는 부분도 많아졌고 세훈의 반응에 자극도 많이 받게 됐다. 재연 때는 히카루가 ‘나는 이미 승(勝)’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반응을 무시했었다. 마지막에 손을 찌를 때 예전에는 경고처럼 지나갔던 부분을 이번에는 세훈으로 돌아와 ‘너 진짜 괜찮겠어?’라고 생각하며 마음 아파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혼자 해보겠다고 주장하고 그걸 어른으로 바라보며 ‘너 진짜 괜찮겠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나중에 해진 선생님이 보내줘서 세훈이 히카루를 받아들일 때도, 이전에는 히카루로서 ‘다시 하나가 되어보자’ 였다면 지금은 ‘그래 나도 세훈이야, 나도 너야’라는 세훈과 같은 마음으로 간다.”

초반 질문부터 긴 답변으로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김히어라는 “사람은 삼세판을 해봐야 안다고들 하잖나. 이번 삼연을 하면서 그동안 못 느끼던 것도 알게 되었고 더 재미있어졌다”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세 번 같은 역을 하며 점점 깊어진 연기를 선보인 그는 자신의 이름에 배역명이 합쳐진 ‘히어라카루’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냈다. 캐릭터 구축에 많은 정성을 쏟은 만큼 그와 나누는 작품 이야기는 굉장히 즐거웠다.

히카루가 변한만큼 정세훈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묻자 “세훈으로 바라본다”고 즉답한다.

“겉으로는 삼연의 히카루가 이전보다 더 세진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세훈과 더 가까워진 상태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네 말 상관없어, 그냥 글을 써야 해. 너는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해’라는 태도로 히카루로서 독립된 존재였다면 이번에는 ‘내 말 들어, 이렇게 해’라는 뉘앙스로 답답해하고 화내는 감정의 교류를 하게 됐다. 이런 면에서 히카루는 세훈이와 같은 시선에서 보고 생각하고 있으며 닮아있다고 본다. 사실 세훈이는 되게 물러터졌다. 그래서 히카루는 ‘넌 잘 몰라서 그래. 세상은 널 궁금해하지 않아’라는 걸 알려주려고 한다. 김해진 선생님도 글 때문에 존재하는 거다. 그 시대에 가난하고 방에 처박혀 있는 사람을 누가 알아봐 주겠나. 글을 쓰고 책을 내서 우리가 읽으니까 존재가 인식되는 거다. 히카루가 세훈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우리도 글을 써서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훈이가 마음 아파서 머뭇거리면 답답하다. 그게 세훈을 위한 길이니까.”

작품 속 히카루의 정체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정세훈의 내면 속 자아, 분신 혹은 다른 인격 등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히카루가 세훈을 정복하고 싶은 욕심도 있는 것일까.

“히카루는 세훈이 되고 싶은 것 같다. 쉽게 말해 메인이 되는 거다. 어떤 영화에서 한 사람이 자신을 철수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사실 다른 인격이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팬레터’가 이중인격 이야기는 아니지만, 히카루는 늪처럼 세훈을 베이스에 깔아두고 자신이 나아가고 싶어 한다. 글도 세훈이 쓴 글을 원하는 게 아니다. 히카루 자신도 결국 세훈이니까 그보다 매력적인 자신이 문학인이라 생각한다. 결국 히카루는 세훈이라는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싶어 하는 것이다.”

김히어라는 “새로운 배우들이 합류하면 테이블 작업을 할 때마다 히카루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한다”면서 ‘히카루는 세훈의 욕망이 확장된 자아’로 정의했다고 밝힌다.

“자신이 나쁜 짓을 해놓고 ‘난 아니야, 내가 그럴 리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잖나. 히카루는 세훈 대신 그런 일을 해준다. 세훈은 ‘내가 모르는 자아가 한 거’라고 말하지만 결국 자신의 마음이 시켜서 본인이 한 것이다. 배우들 사이에서는 ‘히카루가 세훈의 또 다른 욕망’이라고 약속을 했다. 하지만 이것은 보는 관객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달라지고, 배우마다 개성이 다르게 드러나서 충분히 다양하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히카루=정세훈’이라고 생각하는데, 히카루의 글은 ‘여류 작가’라는 확고한 정체성과 스타일을 지녔고 이윤은 ‘이 글 어디에서도 정세훈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글을 쓸 때 히카루와 정세훈 두 사람은 어떤 상태인지 궁금했다.

“히카루의 글이 칭찬받을 때 세훈이 ‘네?’ 하면서 슬쩍 웃는다. 연습 떄 이렇게 맞췄는데 지금 세훈들이 어떻게 표현하는지는 모르겠다. 세훈은 자신(히카루)이 쓴 글을 좋게 평가해주는 것에 기분 좋아하고 그걸 존경하는 선생님들도 자신인지 모르는 것에 즐거워한다. ‘신인탄생’ 때 ‘반응이 어떤가요?라고 묻고 난 후 사람들이 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떡하지?’라는 감정을 내비치면서도 ‘나 대박이지!?’ 하고 우쭐하는 부분이 있었다. 요즘 조금 더 시너지를 내면서 우리 둘이 눈 마주치고 히카루가 ‘봤지? 가자!’라는 식으로 나타내고 있다. 재연 때는 세훈이 모를 확률이 높았는데, 삼연 때는 이것을 아는 것으로 뚜렷하게 드러냈다. 

정세훈은 김해진을 동경에서 시작된 연모로 마음을 드러낸다. 히카루는 해진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까.

“해진을 향한 마음의 시작은 세훈과 비슷하다. 해진이 히카루에게 빠진 이유가 글이잖나. 많은 사람이 극찬을 보낸 자신의 글에 대해 히카루는 슬픔을 알아봐 주었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같이 영혼까지 통하는 사람이라고 느낀 해진을 보며 히카루는 그와 함께라면 우리의 글을 풍성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짓말이 아니야’ 넘버 때 세훈은 해진을 갖고 싶다고 욕망을 드러낸다. 그 순간 히카루가 탄생한다. 넘버 ‘아무도 모른다’ 때 히카루는 세훈을 위로하는 존재였고, ‘그대를 만나면’에서는 히카루를 좋아하는 해진을 보며 세훈은 이걸 조금 더 즐기고 싶어 한다. ‘말해야 하는데!’하면서 세훈은 편지를 숨긴다. 이때부터 욕심이 생기고 해진을 모른 척 하면서 히카루는 ‘선생님 불쌍하다. 그럼 우리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라며 나타나 ‘네가 좋아하는 해진 선생님한테 편지를 써서 글을 남겨보자’고 한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아니었던 세훈, 네 존재감을 드러내보자고 하는 거다. 

히카루에게 김해진 선생님은 이용하는 도구 정도다. 해진 자체가 아니라 그의 글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이 ‘섬세한 팬레터’ 때 딱 갈린다고 본다. 히카루는 ‘선생님한테 방해되는 것들 다 치우고 글자 그대로의 글을 같이 쓰자’고 한다. 이때 세훈은 해진이 결핵을 앓고 있으며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모른다. 해진은 히카루를 잡기 위해 ‘나 얼마 남지 않았다. 나 당신에 대해 떠벌리지 않았다’고 편지를 쓰는데 히카루는 그 내용을 보고 폐결핵 3기라는 걸 알게 된 후 ‘어떡하지?’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거다!’하고 씩 웃는다. 그리고 답장으로 ‘나도 병에 걸렸다. 우리 죽기 전까지 함께 글을 쓰자. 우리의 남은 폐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우리의 글은 영원히 남도록’라고 전한다. 이것이 히카루의 목표다. 이 장면은 일부러 관객을 보며 노래하며 강조한다. 

함께 글을 쓰게 된 시점에서 히카루와 해진은 글을 쓰고 세훈은 교정을 보며 글의 톤을 맞춘다. 이때 이윤이 ‘생의 반려’의 결말을 표현한다. 독잔을 마시고 함께 죽는 소설인데 나는 팔을 떨구지 않는다. ‘생의 반려’에는 결말이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이윤이 ‘해진은 죽고, 너네만 남겠지!’ 생각해서 해진에게 ‘너 이용당하는 거야 나와’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소설의 결말을 각자 상상하길 바랬다. 독잔에 입은 대지만 마셨을 수도, 아닐 수도 있고, 혹시 마셨다가 뱉었을 수도 있잖나. 삼연에 오면서 생각하게 된 건데 손을 떨구지 않은 것만으로도 결말의 해석 여지가 풍부해진다고 생각해서 시도했다.”


(인터뷰②로 이어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