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브라까마' 오세혁 연출 "초연 '깨달음'→재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강조"
[인터뷰①] '브라까마' 오세혁 연출 "초연 '깨달음'→재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강조"
  • 김은정 기자
  • 승인 2020.01.31 23: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오세혁 연출이 말한 재연에서 달라진 점
원작 읽지 않으면 의견 안 받아, 배우들과의 작업 과정

[이뉴스데일리 김은정 기자] 공연계에서 가장 바쁜 작가 겸 연출. 장르와 소재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그의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어딘가에 마법 주머니를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바쁘게 활동하면서도 피곤한 기색을 비치는 일 없는 그는 ‘이야기는 에너지’라고 표현한다.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오세혁 연출 이야기.

오세혁 연출이 참여한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무대화한 작품으로 지난 초연 원작의 결을 잘 살렸다는 평을 받았다. 방대한 원작 가운데 아버지의 살인사건을 둘러싼 네 아들의 심리적 모순과 욕망을 중심으로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 선과 악이 혼재하는 인간 본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2018년 초연 이후 2년 만에 돌아오는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오세혁 연출은 “지난 2년간 매일 이 작품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한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매일 생각했고 이진욱 작곡가와도 자주 연락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이 작품은 10년을 바라보고 하는 작업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성경을 롤 모델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것처럼 뮤지컬 또한 평생의 생각을 따라가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 이번 재연을 준비하면서 소설을 곱씹어봤는데 그 과정에서 추가된 부분이 있다. 연출적으로는 초연이 서로의 말에 전염되고 행동에 집중하는 구성이었다면 이번에는 극복하는 순간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때에도 퇴장이 거의 없었지만 이번에는 더 없이 진행된다. 퇴장 후에도 옆에서 형제의 행동을 지켜보며 느끼며 표현하게 된다. 동시다발적 반응으로 확장한다. 음악적 부분은 기존의 중세시대 음표 그리기 방식처럼 말에 걸맞은 음을 찾아 조절하는 작곡 형식인데, 작곡가가 만든 사운드가 동시에 들어가는 부분이 생겼다. 이런 부분은 음악 자체보다 기운, 공간을 만드는 사운드의 역할을 할 것이다. 동시에 나오는 순간이 있는데 연습실에서 봐도 놀랍고 두근거리더라. 지금은 연습실과 집만 오가며 연습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다. 연습실에서 받은 기운을 헤치지 않은 상태로 품고 있으려고 공간 또한 덩그러니 놓인 곳으로 정했다. 현재 배우, 스태프 할 것 없이 치열하고도 즐겁게 준비하고 있다.”

공연장이 달라지면서 관객이 위로 올려다보던 무대가 내려다보는 구조로 바뀌었다. 관객 시야의 변화에 따라 느껴지는 심리적 변화와 객석과 같은 높이에서 관객을 등지고 있던 피아노의 위치 변화 또한 궁금했다.

“무대 전체 스타일이 변하지는 않는다. 무대를 높여서 시야각을 조정할 계획이다. 이번 극장에서는 피아노의 위치가 중앙 맨 뒤편으로 옮겨진다. 배우들을 절대적 시점에서 내려다보는 입장이 되는 거다. 예전에는 무대와의 거리도 가까워서 배우들의 얼굴을 보기 쉬웠는데 이번에는 연주자가 정말 무대 전체에 집중을 해야 한다. 고난과 고통이 되겠지만 그래서 생기는 새로운 기운과 힘이 있다. 김인애 조감독과 오성민 피아니스트가 번갈아 가며 피아노를 연주한다.”

오 연출은 “오성민 피아니스트가 연습 후 집에 잘 안가고 모임 출석률이 좋다”면서 웃어 보였다. 연습을 마치고 예전 극단 멤버가 개업한 식당에 자주 들른다는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팀. 쉽지 않은 작품을 선보이는 만큼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온 마음을 쏟는다. 연습 뒤풀이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오세혁 연출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연주가 더 깊어지고, 배우들은 더욱 섬세한 연기하는 게 느껴진다. 격 없이 함께 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원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거대한 통찰적 범위의 인간세계를 담고 있다. 신앙, 철학, 이성, 사랑, 믿음, 악 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동시에 은유와 환유적 표현 또한 담겨있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누가 아버지를 죽였는가?’ 질문을 던지며 관객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방대한 원작 내용에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춘 이유와 어떻게 무대에서 펼쳐내 궁극적으로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물었다.

“대본을 보고 가장 놀랐던 한 줄은 ‘누가 행동을 했을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누가 더 원했을까’다. 이야기 속 네 아들은 아버지를 싫어하고 부끄러워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버지가 죽고 난 후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서둘러 매장을 하고 장례를 치르려고 한다. 정신과 의사 융(Carl Gustav Jun)에 의하면 사람의 자아는 밝은 곳을 지향한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미소 짓고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그런거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욕구와 욕망 등을 감추고 있다. 그것을 ‘그림자’로 본다. 그림자는 계속 길어지는데 스스로 마음속 어두운 부분을 꺼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걸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하고 비판한다. 예를 들면, 나는 집 청소를 잘 안 하는데 다른 사람이 정리하지 않은 걸 보면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거기서 그치면 해결이 안 된다. 상대를 보고 나에게 있는 면을 돌아본 후 극복 혹은 반성해야 한다.

작품 속 형제들 또한 서로 마주 보면서 ‘그림자’를 본다고 생각한다. 초연 당시 형제들이 마주 보고 깨닫는 것으로 끝났지만, 이번에는 자기 그림자를 바라보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강조한다. 아버지는 지우거나 부정할 수 없는 존재잖나. 문제는 매장 이후 어떻게 살아가며 극복할 것인가다. 극복에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는 부분이니까.

최근 다시 읽고 있는 책 중에 ‘그리스 비극은 왜 비극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비극은 누군가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도 바꿀 수 없는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기에 이것을 죽어서라도 극복하여 비로소 비극으로 완성된다. 사람은 아무것도 없이 타인을 완전히 공감할 수 없다고 한다. 술 마시며 왁자지껄 즐거울 때가 아닌 다른 이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할 때 우리는 마침내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도 형제들이 서로의 고통과 슬픔을 직면하고 마주하며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작품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던 오세혁 연출은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10년 계획을 깜짝 공개하기도 했다.

“원작이 워낙 방대하고 넓으니 2탄을 ‘스메르쟈코프’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물론 10년에 걸쳐 현재 작품을 더 깊게 파고들어 완성하는 방향도 있지만, 이야기 속 인물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을 만큼 존재감을 지니고 있으니 한 캐릭터씩 시리즈로 이어가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만약 스메르쟈코프를 주인공으로 다음 버전을 만든다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로, 그가 목을 매는 시점에서 시작하면 어떨까 구성해봤다. ‘발작’이 오프닝 넘버가 될 수도 있다. 스메르쟈코프를 통해 ‘왜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없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거다. 그가 유형(流刑)을 떠난 드미트리와 이야기를 하는 환상을 나타낼 수도 있고, 1인극이 될 수도 있다. 어떤 10년이 될지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장 올해 실현되지는 않겠지만 현재 스메르쟈코프 역 세 배우(이휘종, 박준휘, 안지환)에게는 이미 살짝 언질을 줬다. 이 세 사람이 아니면 세계관이 이어지지 않아 의미가 없으니까.”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누가 아버지를 죽였는지’ 보다 ‘얼마나 죽이고 싶었는지’에 무게를 두고 있다. 곧 드러난 ‘행위’보다 ‘본성’과 ‘의지’ 등 내면의 선함의 중요성을 나타내는데, 오세혁 연출이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싶은 선(善)과 악(惡)은 무엇인지 물었다.

“선과 악은 시대가 바뀌면서 더 명확하게 규정되고 점점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0년 전 만해도 가정, 학교 등에서의 체벌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그 자체가 죄라는 걸 사람들은 깨닫게 되었다. 이것을 선이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때 선할 수 있다. 그러나 때때로 화를 내거나 비판할 때 나도 모르게 주입되어 온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오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내 생각인 양 말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후 돌아보면 후회만 남는 것이다. 나도 그런 경우가 물론 있다. 이렇게 서로의 말과 말이 전염되는 환경에서 자신만의 생각과 말을 찾는다면 선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선은 그런 개념이다. 내 말과 행동이 주변 사람에게 행복과 에너지를 주고, 살아갈 힘이 되는 것. 일단 연습실에서부터 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웃음)”

오세혁 연출은 지난해 올린 연극 ‘보도지침’에서도 쏟아지는 말속에서 찾아야 할 진실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말에 관해 더 생각하게 된 것 같다”면서 이유를 설명했다.

“말이라는 건 한 번 뱉어지면 사라지지 않고 계속 흐른다. 요즘에는 데이터에 남아서 더 긴 시간 흘러 결국 누군가를 상처 입히거나 혹은 힘을 주거나 한다. 이렇듯 말에 힘이 있다면, 남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하려고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공연이 있고, 이 모두가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공연을 보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몇 번이고 재해석되며 무대화됐다. 세기를 넘어 공연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일까.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가 자신만의 ‘성경’을 만들고자 탄생한 소설이다. 성경에는 여러 인물이 나온다. 그 자체로 방대한 인물사라고 생각하는데, 원작은 작은 장들로 이뤄진 경전 같은 느낌을 준다. 책을 읽다 보면 하나의 의식이나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또한 대상의 존재를 앞에 두고 100분 동안 종교의식과 같이 자신만의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느낌으로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극장이라는 공간 또한 무언가를 하는 곳이잖나. 관객이 극장을 우리만의 성전 혹은 사원 같이 받아들이고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배우와 함께 만들어가길 바랐다. 지금 연습이 잘 진행되고 있지만 두세 달 동안 ‘어떻게 진실할 수 있을까, 어떻게 진실된 마음을 가질 것인가’ 치열하게 생각했다.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순간의 진실을 좋아하는데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연습이 완성된 후 책을 더 열심히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대본보다 소설을 계속 보게 된다. 마음가짐을 만드는 것부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초연 당시부터 ‘소설을 완독하지 않으면 대본에 대한 의견을 받지 않겠다’고 공지했다. 배우들과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다. 어렵겠지만 책을 읽지 않으면 질문이 일차원적일 수밖에 없다. 완독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각자 더 발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말이 필요 없는 표도르 역 김주호 배우는 매번 굉장히 깊은 고찰과 질문을 던지다가 어느 시점에서 딱 말이 없어졌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돌입한 것이다. 끊임없이 ‘어떻게 다가갈까’ 고민하면서 초연을 만들었다. 이번에도 모든 배우가 원작을 읽었다. 특히 유승현 배우는 작품 출연이 확정된 후 한달 전부터 책을 완독한 후 실시간으로 메시지로 질문을 던졌다. 이미 소설을 넘어 주변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을 위해 우리는 서로의 감정, 의견, 세계관을 나눠야 한다. 그래서 배우들이 다가올수록 기분이 좋다.”

 

(인터뷰②로 이어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