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오세혁 연출 "공연은 낯선 타인과 연결되는 경험"
[인터뷰②]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오세혁 연출 "공연은 낯선 타인과 연결되는 경험"
  • 김은정 기자
  • 승인 2020.01.31 2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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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혁 연출이 전하는 원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고전의 매력
재연에서 새로 합류한 배우들, 그리고 변화
혼자는 외롭고 쓸쓸해, 타인과 연결되는 것의 의미

[이뉴스데일리 김은정 기자] (인터뷰①에 이어)

오세혁 연출을 만나면 꼭 묻고 싶었던 질문이 있다. 바로 ‘글을 잘 쓰는 방법’이다.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지 않는 실력자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예전보다 나아지고는 있다. 워낙 넘사벽이 많잖나. 그 가운데 경쟁력을 가지려면 주체가 안 될 정도로 좋아하는 마음이다.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떠올리고 자료도 찾아보면서 그 생각만 하면 좋은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고전’은 시대와 관계없이 가치를 지닌다. 시대적 배경이 다른 현대에서 고전을 펼쳐낼 때 연출로서 가장 고민하는 부분과 2020년에 고전이 전할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 물었다.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고전을 공연으로 옮길 때 ‘고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재해석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고전에 묘사된 호흡과 기운 등을 무대로 가져오기 위해 고민하고 움직인다는 말이다. 원작 그대로의 구절이나 문장을 가져오는 것보다 영감을 받은 나의 말, 함께하는 배우들의 말을 가져오는 편인데 관객이 고전을 원작으로 한 공연을 볼 때 도움이 되길 바라는 작업이기도 하다. ‘소설보다 좋은데, 소설과 똑같네’ 이런 생각보다 ‘이런 시점으로도 볼 수 있구나’ 생각해주면 좋겠다. 사람마다 시점이 다르고 견해차도 있겠지만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 또한 연출로서 ‘고전은 왜 고전일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고전은 대부분 자기 존재와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 세상이 빠르게 바뀐다고 하지만 그건 예전에도 똑같다. 고전은 ‘아무리 환경과 상황이 변해도 너는 너다, 정체성을 버리면 안 된다. 너의 존재를 인정하고 극복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면 갈수록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고 힘들게 되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내 존재는 가장 행복할 수 있는데 세상에 연결된 것이 너무 많아서 ‘로또 당첨자’ ‘상위 1% 재벌’ 등을 보게 되고 ‘나는 무엇인가?’ 비교하게 된다. 이런 연결은 별로 좋지 않다. 우리는 시야와 시점을 좁혀야 더 넓게 볼 수 있다. 알료샤가 ‘아무도 사랑한 적 없으면서 어떻게 모두를 사랑한다고 말하느냐’고 말한다. 마찬가지다. 알료샤는 신 앞에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말했지만 정작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봐주지 않았고 가족을 돌보지 못했다. 그는 ‘형이 정말 죽인 거 아니냐?’는 불편한 말을 꺼내면서 비로소 온전한 자신이 된다. 앞으로의 세상은 존재 증명을 위해 더 치열해질 것이다. 존재 증명은 SNS에 장식하는 행복 같은 것이 아니라 계속 자신을 들여다보고 정체성, 그림자, 행복을 느끼는 지점 등을 알게 되는 거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고전은 ‘너는 너다, 흔들리지 말아라’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계속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본다.”

세상의 수많은 연결에 대해 말한 오세혁 연출은 공연을 보는 행위 또한 연결의 한 부분이라고 설명한다.

“공연장에 있는 사람들은 2시간 동안 함께 같은 것을 목격한다. 분명 모두 다른 사람이고 모르는 관계인데 그 이유만으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그래서 공연을 좋아한다. 공연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요즘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게 더 즐겁다’고 말한다. 하지만 집에서 혼자 외롭게 보는 거잖나. 일정 시간을 내서 공연을 보는 행위는 사실 그 시간 동안 누군가와 또 무엇과 연결되는 거다. 이 연결은 강요된 사항이 아니다. 오히려 한 장면씩 ‘우리는 이렇게 생각했어, 너는 어떻게 생각해?’처럼 동의를 구하며 유기체처럼 움직이니까 초연과 재연이 다르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 공연 관객 중에는 초연 버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재연 버전에 더 흥미를 갖는 사람도 있다. 마치 작품이 생물 같은 느낌이다. 이에 비해 영화는 한 번 만들고 나면 끝이잖나. 영화는 그대로인데 보는 내가 달라지는 것뿐. 이번에 데이터 상법이 통과된 것을 보고 이렇게 되면 ‘내 것만 보게 되는’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하루 혹은 일주일에 단 2시간이라도 다른 것과 연결될 필요가 있다.”

오 연출의 말처럼 공연은 변한다. 초연으로 시작해 재연, 삼연, 사연 등으로 이어가다 보면 더 좋은 작품으로 완성하기 위해 수정, 보완 작업이 이뤄진다. 초연 이후에는 정해진 틀 안에서 섬세한 변화를 추구해야 하기에 쉽지 않은 작업이 되는데, 한정된 범위 안에서 어떻게 새로움을 찾고 채워가는지 궁금했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경우 2년 전에 담겨 있는 말은 그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 보면 뒤처지거나 새롭게 들어와야 하는 말이 있다. 고르고 골라 수정 작업을 거쳤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번 시즌에는 모든 인물이 퇴장하지 않고 무대에서 연결되는데 디테일한 연기 지시사항은 없다. 결국 말과 노래가 ‘진짜’로 갈 수 있느냐의 문제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애를 써야 하는 지점이 있다. 그걸 만들어놓으면 되레 속는다. 초연작을 만들어 올려두고 ‘이대로 올리면 되겠지?’ 생각하며 속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건 좋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좋은가? 저건 유효하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그런가?’ 이번 공연에서는 순간순간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보실 수 있을 거다.”

이번 재연에는 새롭게 합류한 젊은 배우가 많다. 그들로 인한 새로운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다.

“배우가 바뀌면 전체가 변한다. 그중에서 배우의 톤이 중요한데 이에 따라 부사, 형용사가 많거나 동사만 시키는 경우도 있다. 나는 배우를 하다가 작가, 연출이 된 사람이다. 누구보다 배우를 존경하기 때문에 배우에 맞추어 모든 걸 하고 싶다. 무엇보다 배우의 장점을 발견하려고 노력을 쏟는데 이번 시즌에서는 알료샤 역 두 배우(김지온, 김준영)가 모두 새로 합류한 인원이다. 그들이 사랑 노래를 하는 순간 ‘음악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 다 젊고 음색이 맑다. 음악 없이 솔로를 하는 순간의 전율을 관객분들도 느끼시면 좋겠다.

스메르쟈코프로 이번부터 함께하게 된 안지환은 연습할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는다. 눈이 비추는 것에 따라 달라져서 변하는 것 같다. ‘발작’ 부를 때도 기존 두 배우와 달라서 앉아서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준휘는 2년 전과 비교해 엄청나게 성장했다. 음색 자체가 스메르인데 초연 때 정작 자신은 점점 할수록 모르겠다고 하더라. 더 다가가고 싶어서 고민하는데 다음 날 보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이휘종은 영감을 많이 준 배우다.

드미트리로 새롭게 합류한 이형훈은 연극할 때부터 존경하던 배우다. 사정 때문에 쉬려고 했는데 내가 계속 매달려서 함께하게 됐다. 작업을 함께 하다 보니 뮤지컬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확 끌어올리는 것에 탁월해서 말도 안 될 것 같지만 회의 때 일단 추천했다. 작곡가도 레슨을 해서라도 같이 가자고 동의했다. 이번 작품이 첫 뮤지컬이라 연습을 통한 성장이 바로 보인다. 서승원은 태어날 때부터 드미트리인 느낌이다. 조풍래는 초반 리딩 때부터 해왔으니 대본의 변화를 알고 있고 작품에 대한 애정이 크다. 이반 역 안재영은 동반자 느낌으로 쭉 함께하고 있다.

표도르 역으로 합류한 최영우는 몇 년 전 ‘홀연했던 사나이’ 리딩 때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도지침’으로 오랜만에 보니 멋진 모습이 보였다. 이제 다른 이미지의 캐릭터로 같이 하고 싶었고, 사석에서 ‘그 굳은 심지를 보여주자’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 함께하게 됐다. 사실 드미트리 역도 생각했었는데 표도르로 최종 결정됐다. (김)주호 형은 필사적으로 살려는 모습, 심재현은 이글이글 불덩이 같은 느낌, 최영우는 쉴 새 없는 감정표현으로 이번 표도르는 희로애락이 훌륭한 조합이 됐다.”

‘고전’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아직 뮤지컬도 낯선데 거기에 고전을 더하면 진부할 거라고 판단하고 막연하게 거리를 두기도 한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관객이 고전 작품을 조금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오래 사랑받아 ‘고전’이 된 작품은 당대 인기가 많았다는 거다. 사람들은 어렵거나 복잡하거나 별로인데 인기가 많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인기가 많은 공연도 계속 이어지면 고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도스토옙스키, 셰익스피어 등의 이야기는 그 시절 사람들이 열광했기에 고전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전을 어렵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아마 번역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부분 유명한 학자분들이 번역해서 고전스럽고 단어가 어렵다. 하지만 그런 것에 속을 필요 없다. 책을 사두고 곁에 두었다가 재미있으면 펼쳐보고 아니면 덮으면 된다. 우리가 유튜브나 웹툰을 볼 때 하는 것처럼 대하면 된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인기 소설이 많은데 그걸 선생님이 책 보듯 어렵게 여기지 않잖나. 즐겁게 고전을 보는 방법은 어려우면 놓으면 된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가 10년을 바라보고 있다는 말도 끊임없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곧 고전이라고 생각하면 쉬워진다. 고전을 비평한 책도 있는데 ‘햄릿’을 예로 들면, 시작부터 아버지 귀신이 나오는 이유를 덴마크가 낙후된 나라였기에 이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의견에 ‘셰익스피어는 장터에서 연극을 했던 사람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야 해서 귀신을 먼저 출연시킨 것’이라고 반박했다. 어떤 의미나 상징을 지닌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까’를 더 고민했다는 거다. 사실 내 작품을 본 평론가도 어려운 뉘앙스로 이야기를 해석했던 적이 있다. 그게 아니라서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고전이나 공연을 무언가 분석하고 알아내려는 마음이 아니라 즐기면서 받아들이면 조금 더 편해질 것 같다.”

작가부터 연출까지 공연계에는 오세혁의 이름이 오르지 않은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소재 찾기, 아이디어 수집 등 그의 다재다능한 재능의 비밀이 궁금했다.

“솔직히 공연이 정말 너무 좋다. 나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하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메일로 제목을 보내 쌓아둔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시기가 맞는 작품이 생긴다. 절대 대단하지 않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우선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다닌다. 말은 전염되는 힘이 있어서 하고 싶은 작품에 대해, 오늘 스메르쟈코프 2탄을 말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면 기회를 만나게 된다.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람 일이다 보니 말과 말이 오가면서 힘을 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오 연출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관계가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

“나만 생각하면 살아가는 것에 자신이 없다. ‘내가 왜 살아야 하지, 쓸쓸하다, 힘들다’는 생각이 불쑥 다가온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 살 이유가 생긴다. 곁에 있는 이진욱 작곡가나 다미로가, 혹은 재영이 승현이가 ‘우리 내일 술 마시자’고 하면 그런 작은 이유도 지탱할 힘이 된다. 연결이라는 것도 그렇다. 나는 살고 싶어서 연결하는 편이다. 지금은 오래 얼굴을 못 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걸 실천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삼행시를 지어주고 있다. 이름값이다.(웃음) 2년 전만 해도 함께 작업하는 배우들에게 ‘배우님’이라는 호칭을 붙여 불렀다. 지금은 그냥 이름으로 부른다. 이름을 불러주는 만큼 이름값을 하는 것 같다.”

어떤 작품이든 누군가의 ‘삶’이 묻어있다. 이야기는 어떤 형태로든 ‘살아가고 있음’을 표현하는데 오세혁 연출이 생각하는 ‘살아간다’는 건 무엇인지 물었다.

“예전에는 내가 여기 존재했었다는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록, 책, 공연 등의 형태가 모두 그렇다. 최근 명상 콘텐츠를 접하고 있는데 제각각인 명상법에서도 추구하는 건 단 하나다. 숨 쉬는 걸 느끼는 것. 숨을 쉬고 뱉는 것을 통해 ‘내가 살고 있다’는 걸 체감하게 된다. 마치 도인 같은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행위는 많은 위안이 된다. 어느 날 스님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봤다. ‘깨달음을 얻으면 무엇이 달라지나요?’라는 질문에 스님은 ‘너는 밥 먹을 때 어제를 떠올리고 내일을 생각하지만, 나는 그 순간만 생각한다’고 답했다. 나는 연습실에 갈 때 가방에 그 작품에 대한 것만 챙겨 넣는다. 연습을 볼 때도 의자에 앉지 않고 메모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가 이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에 집중한다. ‘시간’은 위안을 받는 과정과 순간이 합친 총합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길게 생각하는 걸까? 이번 주가 아닌 지금을 느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조금만 즐거워도 막 웃으려고 하고, 슬퍼지면 숨기지 않고 운다. 예전에는 ‘내가 지금 화를 내면 분명 사이가 안 좋아질 거야’라며 참아왔던 부분도 많은데 정작 솔직하게 말을 하고 나면 그렇지 않더라.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살아있음 같다. 어느 측면에서는 유일하게 핸드폰을 꺼놓을 수 있는 공연을 보는 시간이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오는 2월 7일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관람 독려 한 마디

“우리는 제각각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공연장에 함께 있는 100분 동안 같은 시공간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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